UX 개인화, 어디까지가 최선일까?
AI 기반 개인화가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빼앗아 가고 있다.
익숙함의 덫
출퇴근길, 늘 듣던 음악을 재생한다. 플레이리스트에는 한결같이 익숙한 곡들만 가득하다. 뉴진스, 에스파, BTS… 예전부터 듣던 음악들이 반복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취향에 맞는 곡’을 추천해 주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자주 듣는 음악 스타일을 분석하고, 비슷한 곡들을 큐레이션해 주는 시스템. 덕분에 듣기 편하긴 한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몇 년째 비슷한 노래만 듣고 있는 건 아닐까?"
한때는 음악을 추천받는 방식이 지금과는 달랐다. 친구가 알려준 밴드를 들어보고, 라디오에서 우연히 좋은 곡이 흘러나오면 곧바로 가사를 검색해 찾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알고리즘이 알아서 ‘좋아할 만한 것들’만 필터링해서 보여준다. 새로운 취향을 가질 기회는 점점 줄어드는 거다.
편리함이 가져오는 반작용
AI 기반 개인화는 이제 음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디지털 서비스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 넷플릭스는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영화와 드라마만 추천해 준다.
- 유튜브 알고리즘은 취향을 분석해 맞춤형 영상들을 계속 띄워준다.
- 인스타그램, 틱톡, 트위터(x.com)도 사용자가 자주 보는 콘텐츠 위주로 피드를 구성한다.
이렇게 개인화된 경험은 분명 편리하다. 하지만 그 편리함이 오히려 사용자의 시야를 좁히는 부작용을 만들고 있다. 지금 즐겨보는 콘텐츠들은 정말 "내가 우연히 발견하고 좋아하는 것들"일까? 아니면 알고리즘이 미리 정해놓은 범위 안에서 추천해 준 것들을 좋아하게 된 걸까?
큐레이션이란 본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AI 기반 큐레이션은 오히려 확장을 막고, 익숙한 것들만 반복적으로 소비하게 만든다. 이 문제는 단순히 음악이나 영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 사회 이슈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확증편향과 필터 버블
요즘 정치적 확증편향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AI 기반 큐레이션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많이 보는 콘텐츠 유형을 분석하고, 그와 비슷한 것들을 계속 추천해 준다. 그러다 보니 원래 가지고 있던 정치적 성향이 강화되면서, 반대 의견은 아예 접할 기회조차 없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걸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고 부른다. 내가 보고 싶은 정보만 보게 되고, 다른 관점의 정보는 점점 밀려나게 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특정 정치 성향의 기사를 자주 읽는다고 가정해 보자. 알고리즘은 이 사람이 좋아할 만한 기사만 골라서 계속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면 그는 더 이상 반대편의 의견을 접하지 않게 되고, 결국 자신의 신념이 더 확고해진다.
모든 것이 알고리즘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좋은 큐레이션이란 무엇인가?
그렇다고 해서 큐레이션 자체가 문제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좋은 큐레이션이 더 중요해진다.
핵심은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 사용자가 좋아하는 것들을 편리하게 제공하면서도
- 새로운 시야를 넓혀줄 기회를 함께 주는 것
이게 좋은 큐레이션이 가져야 할 역할이다.
현재의 AI 기반 추천 시스템은 사용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UX가 정말 사용자 중심이라면, 지금의 취향만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좋아할 수도 있는 것까지 제안해 줄 수 있어야 한다.
UX는 사용자를 어디로 이끌어야 할까?
디지털 플랫폼이 개인화에 집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사용자가 더 오래 머물도록 만들고, 더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좋아하는 것만 반복해서 제공하는 게 정말 사용자에게 좋은 UX일까?
UX 디자인이 단순히 "편리함"만 추구한다면, 결국 사용자를 자기 취향의 울타리 안에 가두는 셈이 된다. 대신 적절한 우연성을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이런 기능을 생각해볼 수 있다.
- 랜덤 추천 모드: 알고리즘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하는 모드.
- 취향 바꿔보기: 다른 사용자의 추천 리스트를 체험할 수 있는 기능.
- 오프라인 경험 유도: 일정 시간 동안 디지털 콘텐츠를 차단해 현실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
이런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 UX는 단순히 익숙함을 제공하는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탐색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다.
개인화의 균형을 찾아야 할 때
디지털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UX도 그만큼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용자의 경험이 너무 일방적으로 최적화되는 건 아닐까? AI 기반 큐레이션이 정말 사용자의 취향을 확장시키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머물게 하는 도구가 되고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편리함과 우연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 그리고 사용자에게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기회를 주는 것. 이제 UX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그 지점에 있을지도 모른다.